희대의 살인마
옥중에서 살인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고 말하던 연쇄살인마
피냄새에서 향기가 난다
천 명을 죽여야하는데
못 채워서 아쉽다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
최악의 쾌락연쇄살인범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싶어서
살해도구를 일부러 칼에서
둔기로 바꾼 싸이코패스
사형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지조차 않았다.
법정에서도 더이상
살인을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고 했던 정남규.
1. 정남규가 벌인 범행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오면서
범행을 벌이기 시작.
1989년 4월
특수강도죄로 구속되어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음.
1996년 6월
강도와 강간미수죄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음.
1999년
절도와 강간으로
징역 2년을 받음.
2002년
자동차 절도를 하고
징역 10월개월을 받음.
2004년 1월 14일
갑자기 살인 충동을 느낀 정남규.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를 두 세번 갈아타고
부천 원미구 역곡동에서 내림.
성폭행을 한뒤 죽일 생각으로
여성을 물색했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남학생 두명(13살, 12살)을 발견.
마을 인근 춘덕산 정상으로 유인해
성추행 후 살해함.
실종 16일만에
옷이 벗겨지고 손발이 묶인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됨.
경찰수사 중 큰삼촌은
'조카가 있는 곳으로 간다'라며
생을 마감.
2년 5개월 뒤 붙잡힌
정남규는 그냥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고 진술.
2004년 1월 30일
살인할 때의 쾌감을 맛보고
범행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빌라에
무단침입해서 44세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질렀다.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여성.
2004년 2월 6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길에서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일하던
25살 여성을 흉기로 살해.
이 와중에 검거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이문동 살인사건을
본인이 저질렀다고 거짓증언.
정남규는 '내가 한건데
왜 지(유영철)가 나서서 했다고 하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004년 2월 10일
군포시 산본동에서
28살 우유배달원을 흉기로
12군데를 찔러 살해
2004년 2월 13일
골목길에서 30살 여성을
흉기로 찔렀으나 급소를 피해
살아남음
2004년 2월 25일
33세 여성을 흉기로 마구 찔러
상해를 입힘
2004년 2월 26일
할머니 배웅을 하고 돌아오던
여고생을 10차례 흉기로 찌름
2004년 4월 8일
귀가 중이던 25살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서 중상을 입힘
2004년 4월 18일
금천구 시흥3동에 있는 빌라에 침입,
자고 있는 모자를 둔기로 내리침.
중상을 입힘.
2004년 4월 22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
현관에 있던 여대생을 발견,
흉기로 찔러 살해.
2004년 5월 9일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귀가하던 여대생을 살해.
언론에서 '서울판 살인의 추억'
'비오는 날의 연쇄살인'
이런 보도를 하자 긴장한 정남규.
1년간 휴식기에 들어감.
2005년 4월 18일
금천구 시흥3동 빌라에 들어가
잠든 모자를 둔기로 내리침
2005년 5월 30일
군포 산본동 우유배달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함.
2005년 6월 4일
광명 철산동의 주택에 침입,
36세 여성을 둔기로 내려쳐 중상입힘.
2005년 10월 19일
봉천동 주택에서 26세 여성 추행 후
목을 졸라 살해.
안방에 있던 23세 남동생을
둔기로 내리쳐 중상 입히고 불을 지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밖에서 젓가락을
문에 끼워 중상을 입힘.
2006년 1월 14일
도봉구 창동 반지하에서
자고있던 7세 아이를
성추행하다가 아이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자 도주함.
2006년 1월 18일
강북구 수유동의 집에 침입해
17세 여성을 둔기로 내리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집에 불을 지름.
집에 있던 21세 첫째, 12살 막내, 17세 둘째
모두 사망.
2006년 3월 27일
봉천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세자매 중 두 자매를
둔기로 내려쳐서 살해하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힘.
2006년 4월 22일
신길동 반지하집에 침입,
자고 있던 24세 남성을 둔기로 내리치고
24세 남성의 아버지와
격투를 벌이다가 경찰에게 체포됨.
순찰차 뒷자리에 수갑을 찬 채
연행이 되었으나 수갑을 차고 도주함.
2시간만에 동네 주민의 신고로
한 주택 옥상에서 검거됨.
처음에는 연쇄살인범이 아닌
단순 강도상해범으로
잡혀 들어갔던 정남규.
몇년간 정남규를 쫓고 있던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그를 계속 추궁해서 자백을 받아냄.
2006년
서울구치소에서 쓰레기비닐봉투를
꼬아서 만든 끈으로 목을 맴.
구치소 근무자가 병원으로 옮겼으나
22일 오전 2시 40분에 숨짐.
2. 정남규 범행의 특징
주택에 침입했을 때
피해자가 잠을 자고 있으면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고
범행을 저질렀지만
성인남성이 깨어나면
도주를 함.
대부분의 범행지역이
서울 서남부 지역인
구로, 금천, 동작, 관악,
영등포, 광명시 일대였다.
주로 CCTV가 없고
주택침입이 쉬운 곳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남.
정남규도 자신이
'약자만을 공격'한 것을 인정.
"강남 등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CCTV가 많아
주로 CCTV가 없는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방범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서민들의 집을 주로
범행대상으로 함.
담을 넘고 창문을 따는 등이 아닌
문이 열려있는 집을 대상으로
하는 등 사회적 약자만을 골라
범죄를 저지름.
범행대상 1순위가 젊은 여자
2순위를 여자어린이
3순위 남자어린이
4순위 30대에서 50대의
여자를 살인대상으로
정했다고 함.
시민들이 돌을 던지고 욕을 하자
노려보고 맞서 달려들었고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기까지 했다고.
재판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우울하고 답답하니
빨리 나를 죽여달라"
라고 함.
"유영철이 내가 한 범행을
본인이 한 것처럼 말해서
우월의식을 느꼈다
언젠가는 유영철과 함께
범행을 저질러보고 싶다"
라고 말해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3. 정남규 범죄의 치밀함
CCTV에 안 찍히기 위해
지하철 몇정거장을
도보로 걸어서 이동.
범행현장에서 쉽게 도주하기 위해
운동장에서 매일 10km씩
달리기 연습을 함.
도주를 빠르게 하기 위해
평소에 흡연을 하지 않음.
건강프로그램을 주로 보고
식단을 짜서 관리하며
살인을 위한 계획을 함.
악력기와 역기 등으로
체력을 만들음.
과학수사 관련 잡지를
수십권을 보고 있었으며
CSI를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봄.
자신의 범죄를 스크랩하며
수사 상황을 학습함.
권일용프로파일러는
자신의 얼굴까지
스크랩을 해놓은 걸 보고
소름이 돋고
반가웠다고 말함.
4. 범행도구
칼로 범행을 저지르다가
파이프 렌치와 둔탁한 흉기로
바꾸게 됨.
이유는 칼을 사용하면
피해자들이 너무 소리를
질러서였다고.
그리고 사람이 죽는 그 과정을
세세히 보려함이었다고.
하지만 무거워서
가지고 다닐 때 힘들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범행을 저지를
동네에 숨겨두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5. 왜 오랜기간 잡히지 않았을까?
신발의 족적이 남지 않게 하기 위해
신발의 밑창을 도려내서 다님.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미끄럽지 않은 장갑을 착용.
모자도 여러 종류의
모자를 돌려 써가며 범행.
그래서 오랜기간동안
잡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
결국 프로파일러에 의한
자백에 의해
밝혀지게 된 연쇄살인.
6.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2009년 40세의 나이에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을 맴.
1.사형집행이 두려워서 그랬다는 시각
2. 자신에 대한 스스로 살인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정남규는 법정에서
실제로 사형을 빨리
집행해달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고.
7. 정남규의 어린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폭력과 폭언을 당하며 살아온 정남규.
(아버지는 1999년 돌아가심)
초등학교 5학년 때
변태적인 성폭행을 당함.
그 후 여자 화장실에
몰래 숨어서 훔쳐보는
변태적 성향을 가지게 됨.
고등학교 재학 중
자취방 옆에 살던 아저씨에게
두 번 성폭행을 당함.
군복무 시절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하고
한 선임에게 성폭행을 당함.
20대 시절
어머니와 누나들과 살았으나
기초생활수급자로
힘든 시기를 보냄.
이러한 어린시절이
그의 흉악한 범죄의
정당성을 절대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 어떤 이유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동에게 발생한
성폭행과 정신장애를 방치한 경우
잔혹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연구와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살인마 정남규의
웃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