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여객기가

소련 영공에서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에 의해 격추

영문도 모른 채 숨져간

269명의 탑승객과 승무원들

 

로널드 레이건 / 전 미국 대통령

"소련은 269명의 죄없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가 탄

비무장 여객기를 공격했습니다.

비인간적인 이 범죄를

전 세계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때는1983년 9월 1일

새벽 3시 26분 2초.

어디서?

사할린 상공을 비행 중.

소련은 당시에 KAL 007이 당초 항공로인

일본 동북지방 상공에서 크게 이탈하여

비행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상 할로와 격추 지점과의 거리는

무려 660km.

이처럼 항로를 크게 이탈

 

 

최초 사고 원인 (소련측)

항로를 크게 이탈해서

소련 영공을 침범해서라고

주장함.

인명피해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생존자 없음.

대한항공 007기 승객 269명은

전원 사망했다.

kal007기에는 한국인 105명,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대만인 23명 등이 타고 있었다.

당시 단 한 구의 시신은 물론

비행기 잔해도 발견되지 않음.

이 사건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에서 보내던

휴가를 중단하고 백악관으로

돌아올 정도로 미국 사회에서도 큰 충격

 

첫 진상보고서

1983년 12월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가 KAL기 격추 사건

첫 진상조사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정황 추정 수준으로 부실.

'KAL기 조종사는 소련 영공

침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KAL기를 첩보기로 추정한

소련군은 필요한 조치 없이 요격했다'

소련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조사하기가 어려웠다고.

 

당시는 어떤 상황?

1983년 9월 1일 KAL기 격추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2차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는 시기였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에는

미군 정찰기가 민항기로 위장해

소련 영공을 침범하는 일이 흔했는데.

이 사할린 인근 상공을 아예

‘공중 전쟁터’라 부를 정도였다고.

이 때문에 당시 소련 정보부는

각 방공 부대에 미군 정찰기가 영공을 넘어 오면

격추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KAL 007 대한항공은 어떤 여객기?

기종은 747-230B.

196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난 수송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미국이 개발한

초대형 제트기, 일명 점보 여객기입니다.

이륙중량은 350톤이며

최대승객수는 490명,

시속 900㎞로 9000㎞를 갈 수 있는,

당시로서는 최고급 성능의 여객기.

당시에는 269명의 승객을 태우고

뉴욕 J.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 경로를 이탈했을까?

오늘날 발전된

GPS 장비가 도입되기 전이라

대륙간 비행을 할 때 INS라는

관성항법장치를 사용.

INS는 항공기 안에 있는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계를 사용해

항공기의 속도와 위치를 계산.

위성을 통해 위치를 보여주는

GPS에 비해 오차가 큽니다.

권재상 / 공군사관학교 명예교수

"당시에는 대륙간 비행을 할 때

INS라는 관성항법장치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발전된 GPS 장비가

도입되기 전이죠."

Kal 007 대한한공 격추 블랙박스 음성

 

​번역내용

 

1992년 공개된 블랙박스 내용

사고 발생 10년 만인 1993년 6월에

나오게 된 ICAO의 최종보고서.

항로 이탈 원인으로는

KAL기 조종사가 이륙 후 관성항법장치

상태로 둬야 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나침방위비행 상태로 둔 채

운항한 게 밝혀졌습니다.

소련 전투기도 정체불명 항공기가

여객기일 수 있음을 알고서도

필요한 식별 노력이나 요격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에 소련 전투기 조종사와

지상 통제권자 간

무전 녹취록을 중앙정보국(CIA)이

입수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미국은 이 녹취록 등

정보를 공개할지를 놓고

9월 1일 오전 내부에서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를 공개할 경우 정보 획득 수단이 노출돼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였지만,

상황이 너무 엄중해 이를 소련은 물론 대중에도

공개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슐츠 장관은 당일 기자회견을 열어

소련이 2시간 반 동안 KAL기를 추적했고

최소 8대의 전투기가 나섰으며

조종사가 미사일을 발사해 목표물을

파괴했다는 사실을 공개.

 

 

경로를 이탈한걸 정말 몰랐을까?

당시 대한항공기는 천병인 기장이

조종간을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이 45세.

천 기장은 공군 시절 곡예비행단원으로

활동할 만큼 조종에 능했고,

대한항공 입사 후에도 대통령 전용기를

두 번 조종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

엘리트 중 엘리트 조종사.

그랬던 천기장이 수없이 다닌

항로를 이탈했던 이유는 뭘까?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을 얻는 것은

좌표 입력 실수. 당시에 사용하던

INS라는 관성항법장치는

출발지 좌표를 입력하는 것부터

시작을 다시 해야 했다고.

처음에 이 좌표를 잘못 입력하면

갈수록 예정 항로를 크게 이탈하기 때문에

출발지로 돌아가 좌표를 수정해야 하는데.

당시 대한항공기가 앵커리지로

돌아간다면 연료 2만2500갤런

(약 8만5172리터)을

버려야 했다고 합니다.

이러면 회사 측에 1만9000 달러 정도

되는 손실을 안기게 되었던 것.

당시 최고의 파일럿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란 어려웠을 터.

대통령 전용기 기장 심사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과 회사에서

징계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등으로

수동으로 조종하다

잘못 길을 들었을 것이라는 가설.

당시 대한항공기가 꼬리날개에 있던

조명등을 켜지 않은 이유도

지출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가설이 있는데요.

이 등을 켜 놓았다면 로고를 식별해

전투기가 아닌

민항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지만

당시 대한항공기는 이 등을 끄고

운항 중이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공중에서는 충돌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이 등을 켜지

말라고 조종사들에게 지시했기 때문.

이유는?

“전구 수명을 늘려 지출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고

당시에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그리고 대한항공이 연료를 절약하는

승무원들에게 보너스를

줘 왔다는 썰 또한 있었다는 기사 확인.

결국 최종 보고서에도

조종사의 실수로

적혀져 있음.

이 사고 후, 수많은 유족들이

대한항공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지만

대한항공은 "사건의 원인을 알 수 없다"

라면서 거부

시간별 상황

* KAL 007기는 나침방위 245도를 선택하여 비행

* 소련측 캄차카 반도 상공 1차 요격 시도 실패

* 17:27 : 사할린 지역 사령관은

캄차카 상공 에서

영공침범 보고 수령.

* 17:45 : 부터 사할린 소재 레이더에 007기 인식

* 17:52 : 동 항공기가 RC-135인지

여부에 대해 다시 의문이 제기

* 17:42과 17:54 : 두대의 SU-15 전투기가출동

* 17:58 : 805전투기에

007기 추적 및 식별 명령

* 18:09 : 격추명령이

관제사에게 전달

* 18:16 : 007기 재차

소련 영공 진입

* 18:22 : 동 항공기 격추 재차 지시

* 18:25 : 공대공 미사일 2기 발사

미국의 은폐는?

 

격추는 누가 했나?

007기를 격추했던

소련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소련 요격기 조종사 오시포비치.

사건이 일어난 후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는 소련 조종사

사건이 일어난 20년 후.

한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던 소련 조종사

오시포비치.

부인 루드밀라 : 남편은 성격이 침착하고

차분하다. 친정어머니가 참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였다.

그러나 1983년 KAL기 격추 사건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울해하기도 하고,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등

심리적 변화를 많이 겪었다.

한동안 정신이 나간 사람 같기도 했고,

많이 아픈 사람같이 보이기도 했다.

오시포비치 : 그 사건은 내 마음을

오랫동안 짓눌렀고

평생 괴로움 속에 살게 했다.

당시에는 군인으로서

정당한 일을 했으며 명예로운 임무를

수행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사건은 一波萬波(일파만파)가 됐다.

세상에 난리가 났었지.

 

그는 그날 KAL 007이 피격된 당시를

마치 어제 일처럼 시간과

정황들을 모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9월25일이 자신의 생일로,

생일을 앞둔 시기여서 더

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날 사건(KAL기 격추사건)이

인생을 바꿔 버렸다.

인터뷰 당시

오시포비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007 여객기의 운명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꼬리날개의 로고 조명등을

끄지 않았더라면.

엔진과 꼬리에 미사일 두 발 명중.

불길에 휩싸여

나선형을 그리며 추락했다.

여객기로 알았다면

격추명령에 이의 제기했을 것이라고

인터뷰 했습니다.

 

소련측 주장은 KAL 007는

미국의 정찰기였고 탑승자는

스파이들이었다고 주장

격추를 당한 후에도 비행을 했다?

레이더 데이터, 요격기 조종사의 보고 등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피격을 당한 4분 후에도

007기가 고도 15k 피트로

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항공기의 최후 교신 내용이

해상 불시착의 전형적인 비행절차인

통제하강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블랙박스에 따르면

KAL 007기는 피격 후 잠시 조종불능

상태를 겪었으나, 이윽고 조종성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조종석

음성에는 엔진상태도 정상이라고 보고됨.

(그후 목표 추가 공격에 대한 교신은 없음)

당시 미국 측은 KE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소련군 교신을 감청하여

알고 있었음에도 침묵.

이는 미국이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소련이 계속 격추 사실을

부인하자 감청된 녹음을 공개

 

 

바다에 불시착?

당시 슐로스버그 교수는 대한항공 007기의

무선교신 내용을 기초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을 제대로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

소련 전투기의 첫 번째 미사일은 완전히 빗나갔고,

두 번째 미사일은 대한항공기 동체 옆

50m에서 폭발했다는 것.

두 번째 미사일 파편이 대한항공기를

강타해 타격을 줬지만 대한항공기는

12분을 더 비행해 소련 영해 안의

오베론 섬 근처 바다에 불시착했다는 설명.

블랙박스의 무선교신 내용에 따르면

새벽 6시 26분 kal기 부기장은

기장에게 ‘엔진이 고장 나지 않았다’고 보고.

미사일 폭발 11초 후

조종실 고도 경계경보가 울렸는데

이는 구멍 뚫린 동체에서

공기가 유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

또한 중요한 부분은 미사일 폭발 뒤

11초 후 경계경보가 울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kal기의 타격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이와 관련해서 책까지 낸

슐로스버그 교수.

 

 

조종실 음성 녹음기(CVR)

테이프 녹음 내용

18시 26분 06초 천병인 기장

"무슨 일이야???"

라고 소리침.

손동휘 부기장 :

"무슨 일입니까?"

라고 함.

2분 후

천병인 기장 : “속력을 줄여!”

손동휘 부기장 : "엔진은 정상입니다, 기장님”

이라고 대답.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시포비치 소령의 미사일은

목표물을 빗나갔음을 나타내는데요.

18시 26분 45초에 손 부기장은

다시 “엔진은 정상입니다, 기장님”

이라고 보고.

 

 

탑승객 일부가 살아있다?

1992년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손세일 의원이 CIA 극비문서를 입수했다면서

주장했던 내용입니다. 대한항공 007편이

공중 폭발하지 않고 해상에

불시착했을 가능성이 크고

탑승객 가운데 일부가 생존해

구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

의문점이 너무나 많다

소련 공군은 KAL기가 그들의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곧장 헬기를 보내

현장수색을 명령했습니다.

대한항공기 사고지역 일대에는

여객기에 적재되어 있어야 할 화물들도 없었으며

사고 이후 일본의 해안으로

밀려 온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부분 시체 2구와

작은 신체조각 11구가 전부.

그런데...

소련 측이 사고 직후 213켤레의

신발을 사고현장에서 수거했다면서 공개.

시신은 없는데

신발만 발견된 것은 대체 무슨 일?

비행기는 정말 착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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