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방송되는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개그맨 이경애가 딸과 함께 출연을 하게 됩니다.

방송을 통해 이경애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과거에 이경애가 부모님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했던 내용이 다시금 재조명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거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이경애는 "제가 방송을 하고 성공하고자 했던 이유는 엄마를 호강시켜 주려고 한 것"이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경애는 "우리 부모님은 가난한 분들이셨다. 아버지가 약주를 너무 좋아하셨다. 술값이 너무 들어가니까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생활이 안 됐다. 엄마가 늘 장사를 했다. 아버지 몰래 했다. 못 하게 하셨다. 월급도 안 가져다 주면서 못하게 하는 건 애들과 그냥 죽으라는 거 아니냐. 그래서 어머니가 늘 조금이라도 벌어보려고 계절마다 다른 장사를 하셨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개그우먼 이경애는 아버지의 도박을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엄마가 정말 고생해서 한 푼 한 푼 모은 걸로, 그 당시 집이 70만원이었다. 1년 만에 아빠가 꾀임에 넘어가 노름을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1984년 21살에 KBS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며 개그우먼으로 데뷔하기까지 10년간 망우동에 위치한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아버지는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셨고, 어머니가 행상하며 마련한 돈으로 일곱 식구가 살았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경애는 "엄마가 모아서 집 산 것이 날아갔다. 엄마가 절망을 겨었다. 맥을 놓으셨다. 정신이 이상해지셨다. 집을 나가셨다. 뒷산을 가봤더니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계셨다. 내가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빌었다. '너 때문에 죽지도 못 한다'라고 때리셨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강제로 끌고 내려왔다"라며 엄마가 여러번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노름빚으로 집을 날리자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다 죽음 직전까지 다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를 말리며 돈 많이 벌어 호강 시켜 드릴테니 제박 죽지 말라고 빌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어서 "초등학교 졸업 후 학비가 없어 중학교 입학을 하지 못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5남매를 모두 보살피기 어려웠던 부모님이 나를 입양 보내려고도 했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입양까지 갈 뻔 했던 이경애는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수세미, 코코아 등 방문판매를 하며 어린 시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련도 많이 겪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한 번은 아파트에서 수세미를 팔다 잡상인으로 걸려 경비아저씨에게 4시간 동안 무릎 꿇고 벌을 받았다. 물건도 돌려주지 않은 채 밤 8시까지 벌을 준 경비아저씨처럼 나쁜 어른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다 1998년, 아프신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드리고자 35세의 나이에 대학교 원서접수를 하러 모교인 송곡여자고등학교를 찾아갔고, 신현돈 선생님을 만나 평생 잊지 못할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신현돈 선생님이 입시 준비를 위한 문제집을 챙겨주신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선생님의 한마디 덕분에 늦깎이 대학생활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게 입학하자 간경화로 복수가 찬 상태에서도 입학식을 보러 오셨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후 이경애는 1983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 이듬해 1984년 제 2회 KBS 개그콘서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정식 데뷔했습니다. 당시 이경애와 같은 해 데뷔한 동료는 김미화, 이봉원, 임미숙 등이 있습니다. 

이경애는 개그우먼 임미숙과 굉장히 친한 사이로 알려졌는데요, 두 사람은 데뷔 시절부터 함께하여 벌써 30년이 넘는 기간 우정을 이어오고 있고, 특히 임미숙은 17년전 이경애의 부탁으로 어머니 임종을 대신 지켜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경애는 김학래의 편지를 임미숙에게 계속 전해주어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경애 종교는 개신교이며, 학력은 송곡여자고등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이경애는 동덕여대를 1999년 36살이란 늦은 나이에 입학했다고 하는데요, 대학이 그의 평생 꿈이었다고 합니다. 이경애의 현재 소속사는 뉴에이블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이경애의 남편과 이혼 재혼 그리고 나이차이 등 

이경애는 두 번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그우먼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 첫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결국 이혼했고, 이후 남편 김용선을 만나 재혼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1997년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당시 카페에서 빈 좌석이 모자랐는데 김용선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 이경애가 합석하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 김용선 나이차이가 14살이나 나는 연상이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남편 김용선은 전처와의 사이에 3자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자녀들 모두 이미 성인이 되었기에 이경애의 손에서 자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날 무렵 이경애 남편 김용선의 간이 급속도로 안좋아지기 시작해 결국 간 이식을 김용선의 큰아들로부터 무사히 간이식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두 사람은 2002년에 결혼을 하지만 이경애는 임신 불능으로 임신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경애는 포기하지 않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인공수정을 결심했고, 결국 딸 김희서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얻은 딸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도 잠시, 이경애는 병원으로부터 암선고를 받게 되는데 알고 보니 오진이었습니다. 이경애의 맹장이 특이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맹장염을 암이라고 오진했던 것입니다. 

이후 이경애는 맹장염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두 달 정도 후에 교통사고를 당합니다.(2007년)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잠깐 세웠다가 뒤에서 오던 차가 졸음운전을 해 이경애를 그대로 받아버린 것입니다.

당시 이경애는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관절이 탈골되는 대형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후 더 큰 문제는 남편인 김용선이었습니다.  

만성신부전증(간경화) 판정을 받아 약 16년간 투병생활을 했던 남편 김용선이 아내인 이경애에 대한 걱정으로 며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결과, 간이 급속도록 나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경애는 교통사고로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간병에 매달리게 되었고, 덕분에 남편의 건강은 다시 회복을 하게 되었지만 이경애 역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몸 오른쪽 마비 증상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경애는 본인과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그러는 사이 2005년경에는 개그맨 이경래의 부탁으로 송년회 행사장에 갔다가 감전을 당해 공중으로 튀어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도 이경애의 건강 적신호는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갑상샘 항진증으로 2010년 넘어가면서 갱년기 증상이 극도로 심해져 살이 엄청나게 빠져 47kg까지 빠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이경애 남편의 건강은 이경애의 극진한 간별 덕분에 회복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건강하게 살다가 다시 차츰 간이 더 나빠지게 되면서 딸인 김희서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인 2013년에 향년 64세의 나이로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경애는 남편과 사별 후 큰 슬픔에 빠져 50년 동안 마실 술을 몇 달간 더 많이 마셨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게다가 과거 나이트 사업으로 억대 빚까지 지게 되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이경애는 "남편을 16년 간병했다. 하늘나라로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다. 아이가 없었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와 벽을 보며 억지로 웃으며 버텼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긴 병간호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고 병간호하는 사람이 먼저 간다는 여러 말이 있다. 근데 16년이었다. 보호자가 떠난 건데 그 시절 하나하나 말로 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요.

또한 "아픔을 겪고 갖고 있던 돈, 나름대로 쌓았던 명예가 한 순간에 무너져 차비가 없어 걸어 다녔다. 차비를 빌려 다닐 수도 있었지만 사람 만나기가 싫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무너진 자신이 스스로 용납이 안 돼 대중 교통도 못타고 걸어다녔다. 이렇게 사느니 내 목숨 하나 끊을까 싶었다. 여러 번 시도도 했다. 당시 부모님이 살아계셨는데 사고 당했다고 말할까 싶었다"라고 하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습니다.

한편, 이경애는 딸 희서 양이 어릴적 아토피 증상이 심해서 자연과 가까운 남양주집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물론 스스로의 건강(맹장염 수술, 갑상선 항진증 투병) 때문에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이경애의 집(전원주택) 위치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경애의 집(전원주택)은 4계절의 아름다운 경치를 1년 내내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히 실내는 높은 천장과 나무, 흙을 이용한 인테리어, 그리고 고풍스러운 소품들로 디자인돼 있다고 합니다.(참고로, 이경애 집(전원주택) 인근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다고 하네요)

이경애 남양주 집은 신박한 정리에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방송(신박한 정리)에서 이경애는 집 정리 도중 페트병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이게 이경애가 딸을 위해 하나씩 모은 것이라고 하네요.

당시 이경애는 "만약 전쟁이 나면 비상식량을 모아서 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쌀이 없어서 우리 딸이 먹을 게 없을까 봐 공포가 찾아왔죠. 비상식량을 담을 수 있는 페트병을 모은 거죠."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경애의 세 번째 남편은 누구 

개그우먼 이경애의 올해 나이는 59세입니다.

이후 두 번째 배우자와 재혼했으나 사별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경애는 한 방송(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세 번째 결혼 사실을 털어놓았는데요, 이경애는 "사실 올해 만나서 사귄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결혼해서 살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경애 삼혼 남편 나이 직업 등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후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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